시와

옥상이 논다

투립 2013. 1. 9. 19:24

평상이 없다.

예비군복과 기저귀가 없다.

새댁의 나이아가라 파마가 없다.

상추와 풋고추가 없다. 줄넘기 소리가 없다.

쌍절봉이 없다.시멘트 역기와 통기타가 없다.

골목길 멀리 내뱉던 수박씨가 없다.

항아리가 없다. 항아리 뚜껑 위에 감꽃이 없다.

모기장이 없다. 모기를 잡던 박수 소리가 없다.

모기장을 묶어매던 돌덩어리 네 개가 없다.

고무신이 없다. 고무신 속 빗물 한 모금이 없다.

안테나가 없다. 안테나를 돌리는 작은 손이 없다.

잘 나와? 잘 나오냐고? 안 마당에 내려놓던 고함이 없다.

우리 집은 잘 나오는디 염장 지르던 옆집 아저씨의

늘어진 런닝구가 없다. 런닝구 속 마른 가슴팍에 포도씨가 없다.

근데, 이 많은 것들이 언제 내 머리 속에 쳐박혔나?

이마는 어느새 평상 처럼 넓어졌나?

가슴 속 잡것들은 다시 옥상에 기어 올라가려고, 불끈불끈

내 런닝구는 누가 이라도 잡아당겼나?

어떤 싸가지가 수박씨 날리는거야?

고개 들어 텅 빈 옥상을 두리번두리번.

                                                                                     이정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