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책

좁은 문~~~~~~~``앙드레지드

투립 2016. 3. 3. 15:25



이윽고 우리는 차거운 어둠에 잠기리라.

잘 있으라, 우리의 너무도 짧았던

우리들 여름의 생기 찬 빛깔이여.

                    / 보들레르의 시에서 옮김


아직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완전을 지향했던 것도

그를 위해서 였다.

그런데 이 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그가 없어야 된다는 것.

이것이 오오, 주여!

바로 당신의 모든 가르침 중에서 무엇보다도

저의 영혼을 당황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가 덕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우상이 되었다.

우리 둘 중에 한 사람 만이라도 거기에 도달해야 한다.

주여, 비열한 저의 마음은 도저히 이 사랑을 극복할 수 없게 되었으니

주여, 제발 그가 저를 사랑하지 않도록 만들 힘을 제게 주시옵소서.

그리하오면  저의 공덕보다 무한히 훌륭한 그의 공덕을 당신께 바칠 것이오니.......


그리고 오늘 그를 잃어버려 제 영혼은 흐느끼고 있으나

그것은 장차 당신 품에서 그를 다시 찾으려 함이 아니옵니까?

말씀해 주시옵소서. 오~~ 하느님!

어느 영혼이 그의 영혼보다 더 훌륭하겠습니까?

그는 저를 사랑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좀 더 훌륭한 것을 위해서 태어 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가 저로 인해 걸음을 멈추게 된다면

저는 그만큼 더 그를 사랑하게될 것이 아니옵니까?

영웅적일 수 있는 모든 것이 행복 속에서는

얼마나 위축되고 있사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보다 더 나은 것을 위해 간직해 두셨기에)


지드가 청년시대까지 자신을 강하게 지배했던 금욕주의에서

빠져 나오려고 피투성이 싸움의 기록이

이 작품과는 완전히 대립적인 '배덕자'이다.


지드는 오히려 알리사가 품고 있던 엄격한 도덕주의를 비난하고 있다.

(좁은문)을 쓰게 된 동기는 너무나도 허무한 자기희생에 대한 풍자였다.


지드는 인간성의 자유를 탐구하며 일생을 헤맨 사람인데

이 작품은 그 영원한 순례의 도상에 세워진 이정표이다.


알리사의 일기에는 제롬을 열렬히 사랑하는 현세적인 욕구와

그 문이 너무나도 좁은 신에게의 봉사 사이에 낀

그녀의 고뇌가 생생히 그려져 있다.





"분명히 고통은 인간의 진보를 돕는다. 그러나 의무가 되었을 때

그것은 모든 위대성을 상실한다."

알리샤를 창조함에 있어 지드는 희생의 종교적 모랄을 성직화하여

자기 자신에게 설명하려고 그녀는 짐짓 자기 자신을

괴롭히려고 힘썼다.

인간의 쾌락은 고통을 거절하는데 어째서 신에게는 逸樂이 되는가?

어떤 기괴한 사상의 얼개에 의해

사람은

고통으로써 죄를 씻어야 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는가?

그리하여 지드는 알리사가 일생을 바쳐 좁은문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섰는데, 결국 그것은 신에게 농락당한데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레옹 피에르 캉의 좁은 문에 대한 비판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