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봉숭아/ 도종환

투립 2017. 8. 28. 23:22


봉숭아/ 도종환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베어

사랑아 너는 아리고 아린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냐.

 

- 시집울타리 꽃(미래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