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전율!

이유없는 슬픔/이 건용

투립 2017. 9. 19. 14:47



말로 나타낼(형언·形言) 수 없는 것들이 많고도 많다.

음악의 우수가 그중 하나이리라.

말이 부족하니까 시()가 나오나 보다. 시에는 있다.

하이네는 한 소녀에게

 너 꽃처럼 아름답구나하고 나서는 이어서 너를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에 아픔이 솟는다

(‘그대 꽃과 같이의 첫 절)고 노래한다.

박용철은 눈 온 아침의 서정을 그리다가

 임이여 설운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

(‘눈은 나리네에서)라고 읊는다.

이 아픔, 이 설움은 걱정·근심이 아니다.

음악에서처럼 뜬금없는 우수다.

 

 


가을을 우수의 계절이라고 한다. 맞다.

높아지는 하늘, 새삼 멀리 보이는 산, 그 산의 달라지는 빛깔, 떨어지는 나뭇잎, 그 나뭇잎을 몰고 가는 바람.

노래도 많고 시도 많다.

그 많은 내용을 나에게 요약하라면 덧없음’(이 말도 성에 차지 않지만)이라 하겠다.

모든 계절이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보여주고 어떤 생물이든 실은

잠시 있다 가는 것이지만 가을은 그것을 눈에 띄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 우수의 음악들도 그렇다는 것인가?

말이 나타내지 못하는 덧없음을 음악이 들려주고 있는 것인가?


지면에는 음악을 담을 수 없으니 시구로 마감해야겠다.

지독한 더위에 고생했으면서도 가을에 우리는 노래한다.

머지않아 우리들 차디찬 어둠 속에 잠기리니/ 잘 가라 너무나도 짧았던 우리의 힘찬 여름 빛이여”(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에서)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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