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는 슬픔/이 건용
말로 나타낼(형언·形言) 수 없는 것”들이 많고도 많다.
음악의 우수가 그중 하나이리라.
말이 부족하니까 시(詩)가 나오나 보다. 시에는 있다.
하이네는 한 소녀에게
“너 꽃처럼 아름답구나” 하고 나서는 이어서 “너를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에 아픔이 솟는다”
(‘그대 꽃과 같이’의 첫 절)고 노래한다.
박용철은 눈 온 아침의 서정을 그리다가
“임이여 설운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
(‘눈은 나리네’에서)라고 읊는다.
이 아픔, 이 설움은 걱정·근심이 아니다.
음악에서처럼 뜬금없는 우수다.
가을을 우수의 계절이라고 한다. 맞다.
높아지는 하늘, 새삼 멀리 보이는 산, 그 산의 달라지는 빛깔, 떨어지는 나뭇잎, 그 나뭇잎을 몰고 가는 바람.
노래도 많고 시도 많다.
그 많은 내용을 나에게 요약하라면 ‘덧없음’(이 말도 성에 차지 않지만)이라 하겠다.
모든 계절이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보여주고 어떤 생물이든 실은
‘잠시 있다 가는 것’이지만 가을은 그것을 눈에 띄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저 우수의 음악들도 그렇다는 것인가?
말이 나타내지 못하는 덧없음을 음악이 들려주고 있는 것인가?
지면에는 음악을 담을 수 없으니 시구로 마감해야겠다.
지독한 더위에 고생했으면서도 가을에 우리는 노래한다.
“머지않아 우리들 차디찬 어둠 속에 잠기리니/ 잘 가라 너무나도 짧았던 우리의 힘찬 여름 빛이여”(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에서)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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