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최순우

투립 2019. 11. 5. 22:53

한국의 아름다움, 한국인의 미의식을 일깨우는 최고의 안내서

한국의 주택은 조촐하고 의젓하며 한국의 자연 풍광과 그 크기가 알맞다.

실로 한국의 회화는 중국 그림에서나 일본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야릇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기교를 넘어선 방심의 아름다움, 때로는 조야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런 소산한 감각은  한국 회화의 좋은 작품 위에 항상 소탈한 아름다움으로 곁들여져 정취를 돋구어 준다.

강산만리의 호활한 자영풍광 속에 어디에 어떻게 이 죽서루 한 채 멋지게 들여 앉혀서 강산풍광에 화룡점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있다.

기교나 허식을 멀리 벗어난 숫배기의 아름다움이다.

세상에는 이런 조선 민요기의 탄생을 무지의 소치, 또는 빈곤의 소치, 실의의 소치로 돌리려는 사람이 있다./ 살결의 감촉-도자기p57

크고 작은 자연괴석들과 잘 다듬어진 장대석들을 자연스럽게 다루면서 장단 맞춰 쌓아 올린 불국사 석단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 안전과 율동, 인공과 자연의 멋진 해화에서 오는 이름모를 신라의 신비스러운 정서가 숨가쁘도록 내 가슴에 즐거운 방맹이질을 해준다.p71

새벽이면 새벽대로 달밤이면 달밤대로 석가탑의 윗토막은 희망처럼 은은하게, 멀게,  혹은 가깝게 눈과 마음을 적셔주는 것이다.p77

나는 석굴암에 갈 때마다 그 자비롭고 원만한 본존불상이나 보살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잘 생긴 한국인의 얼굴과 그 풍김을 다시금 그 모습들에서 되새겨 보면서 진실은 속일 수도 감출 수도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p131

신라 여성들이 지녔던 높은 절조와 청정한 풍김을 연상하면서 마음이 설레곤 했다.p131

육체 사실의 극치를 다했던 희랍조각의 동적인 아름다움 위에 신라인의 고요한 사색을 담은 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따라서 희랍의 여신상보다도 한층 정신적인 깊이가 있다./석굴암의 범천상 p132

제아무리 희한한 물감이라도 고요와 사색에 사무친 고려청자의 아득하고도 깊은  빛깔을 그처럼 물들일 수는 없다.

고려 사람들은 스스로 그들의 청자색이 즐겁고 대견해서 비색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는데  그들은 秘色이라 일컬어 온 송나라 청자에 비겨 한층 자랑스러운 고려의 비색(翡色)을 그리도 자랑스러워 했다.p231

그 어느 것 하나도 이 청자 상감 무늬의 지체 높은  호사스러움에 당해 낼 것이 없을 듯만 싶다.p233

고려의 꿈이라고나 할까, 잠이 들 둥 말 둥 몽매간에 백학이 나는  상쾌한 바람소리 같은 고요와 안온한 아름다움이 여기에 가라앉아 있었을 것이다.

비취빛이 곱다고 하지만 이러한 고려의 비색 청자가 지니는 철학적인 깊이에 따를 수 없으며 화사한 듯 싶으면서도 조촐하고, 조촐하면서도 드높은 이상을 꿈꾸는 고려인의 환상이 다시금 소리없이 즐겁다./청자상감운학문 베개 p240

이러한 아름다움은 오로지 한국 사람만이 빚어낼 수 있는 어질고  착하고 또 순정적인 조형감각이라고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다.p267

한 국의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어울러 너무나 욕심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백자 달항아리 p281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하면 혹시 심미에 대한 건강한 태도가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조선 자기의 아름다움은 계산을 초월한 이러한 설명이 필요하리 만큼 신기스럽고도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백자 달항아리p283

팔모 모깍기의 날씬한 몸매에 기름지지 않고 조촐하고도 가늘게 그려진 들국화 한 가지, 마치 조선의 아름다움, 조선인의 지조가 바시시 그 속에 숨쉬는 듯싶은 쪽빛상념이 어지러워진 내 눈동자를 지금 씻고 또 씻어 주고 있다./청화백자추초문병p289

조선시대의 청화백자나 철화백자 항아리에 그려진 용 그림 중에는 자유와 활력과 치기가 한데 곁들여져서 일종의 마음 개운한 해학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예가 적지 않다./청화백자운용문 항아리/p295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 등이 보여주는 수다스럽고 다채로운 장식 무늬에 비하면 너무나 조촐하고 겸허한 의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p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