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매(輪廻梅)를 아시나요?
불안과 적막의 봄날은 간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나이들어 맞는 봄은 찬란한 슬픔이라.
바이러스의 위세로 천지가 숨 죽인 봄밤,
문득 매화 옛 가지에 한 송이 꽃이 벙글어
그리운 그 사람의 목소리인 듯 아련한 향기를 전한다.
봄눈이 녹기 전, 천지는 눈 속에 하얗게 얼어붙었는데 홀로 꽃을 피운다 해서
‘설중매’라고도 불리우는 꽃!
꽃 모양도 향기도 안으로 숨어있는 ‘암향’의 꽃!
우리 선조들은 매화를 꽃 중에 최고로 여겨 그 향을 ‘암향’이라 하고 그 은은한 향기는
귀로 들어야 한다고 하여 ‘문향’이라 하였다.
‘향기를 듣는다’고 표현한 드높고 멋스러운 선조들의 정서가 시간의 강을 건너와
파도처럼 오늘 밤 내 가슴에 일렁인다.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이며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등과 더불어 청나라까지 사가시인(四家
詩人)의 한 사람으로 문명을 날린 이덕무(1741~1793)는 호를 매탕(매화에 미친 바보)이라
짓고 밀랍으로 매화를 만들어 항시 즐겼다고 전해온다.
밀랍으로 만든 매화꽃이 바로 ‘윤회매’인 것이다
매화와 유자/이덕무
매화가 있는 감실 가운데
유자를 놓아두는 것은
매화를 모독하는 짓이다.
예전부터 매화는 맑은 덕과
깨끗한 지조가 있다고 하는데
어찌 다른 물건의 향기를 빌려
매화를 돕는단 말인가?
이렇듯 이덕무의 매화 사랑은 각별했다.
한마디로 매화 마니아였던 것이다.
중국 유학 중에 밀랍을 녹여 모란과 국화를 만드는 것을 본 이덕무는 조선에 돌아와
그 방법을 매화에 적용시킨 것이다.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는 20일 정도 밖에 꽃을 감상할 수 없는데 이를 안타까워하던 그는
시들지 않아 사계절을 감상할 수 있는 인조매를 만들었던 것이다.
2백여 년이 지나 이 매화의 가치를 되새기며 불교예술가 김창덕 작가가
이덕무의 유산인 윤회매를 격조 있는 예술품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성과 혼을 담아 윤회매를 만드는 그의 손에서 선조들의
기품 있는 삶과 정신이 현대예술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꽃잎 만들기는 적당한 온도(75도)로 녹인 밀랍을 꽃잎 틀로 뜨고 꽃받침을 따로 떠서 곧바로 차가운 물에
담그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빨리 굳는 밀랍의 특성상 손놀림이 더디면 꽃잎이 두꺼워지고 빠르면 바스러지기 때문에 온 신경을 손가락 끝에 모아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또 노루 털을 사용해 꽃술을 만들고 털끝엔 황가루를 묻혀 다섯 장의 꽃잎 가운데에 고정시킨다.
여기에 아름다운 가지를 골라서 그 위에 밀랍으로 만든 매화를 붙여 완성하면
한 잎, 한 잎씩 붙인 꽃잎들이 매화 옛 등걸 위에 흐드러질 듯 피어난다.
생화보다 더 생화 같은 윤회매!
금방이라도 벌이 날아들 것만 같은데 인조매라니.....
그윽한 향기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가화라니......
꿀벌이 꽃에서 꿀을 채취해서 밀랍으로 재탄생하고, 밀랍은 다시 꽃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여기에 ‘매’자를 붙여서 ‘윤회매’라 부른다.
김창덕 작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윤회매를 알리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매화 영상에 빛과 어우러진 윤회매 그림자를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자 놀이’를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기도 했고 현대음악을 접목한 퍼포먼스도 공연하여 윤회매에 담긴 선조의 고상한 품격과 얼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궁극적인 목표는 이덕무 선생의 저술 총서인 ‘청장관전서’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윤회매의 작업과정이 세세하게 기록된 저서로 원본이 미국 UC 버클리 동아시아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이 이루어져 이덕무 선생의 삶과 정신이 우리 시대에 환생하는 꿈을 꾼다.
매화 향 들리는 꽃 피는 봄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