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스크랩] 황진이와 벽계수, 서경덕,임제에 얽힌 간단한 이야기

투립 2014. 12. 21. 17:16

 

 

 

 

 

 

 

황진이와 벽계수, 서경덕,임제에 얽힌 간단한 이야기

 

종실 벽계수는 이종숙(李琮淑)은 세종대왕의 17번째아들 영해군의 손자로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개성으로 유인해 온데서 부터 이야기다.

 

벽계수의 호언장담을 전해들은 황진이曰, 개성까지만 데리고 오면 그다음은 不問可知
과연 개성인근까지 말타고 도착한 벽계수를 그유명한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한번가면 다시 못온다는 시조를 읊는 황진이의 자태에 넋을 빼앗기고 낙마했다는 이야기

다음은 花潭서경덕이 바로 송도 부근의 성거산(聖居山)에 은둔하고 있을 때였다.


자연히 그의 인물됨이 인근에 소문이 났었다. 비가 오는 날 황진이는 서경덕을 찾아간다.
하얀 속치마 저고리, 그 위에 흘러내린 비. 비에 젖은 하얀 비단 속옷이 알몸에 밀착되어
가뜩이나 요염한 기녀의 몸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차림으로 계속 비를 맞으며 서경덕이 은거하고 있던 초당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은 오히려 황진이를 반갑게 맞았고, 비에 젖은 몸을 말려야 한다며 아예 황진이의
옷을 벗긴 모양이었다.


옷을 벗기고는 직접 물기를 닦아주는 서경덕의 자세에 오히려 황진이가 부끄러울 판이었다.
황진이의 몸에서 물기를 다 닦아낸 서경덕은 마른 이부자리를 펴 황진이를
눕히고는몸을 말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글읽기를 계속했다. 날은 어두워졌고 이윽고 밤이 깊었다.
삼경쯤(23시~01시) 되자 이윽고 서경덕이 황진이 옆에 누웠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이내 가볍게 코까지 골며 편안하게 잠을 자는 서경덕이었다.
아침에 황진이가 눈을 떴을 때 서경덕은 이미 일어나 밥까지 차려 놓았다.
황진이는 성거산을 다시 찾았다.


의관을 제대로 갖추고 음식을 장만하여 서경덕을 찾아가자 역시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이 이번에도 반갑게 맞았고,
방 안에 들어선 황진이는 서경덕에게 큰절을 올리며 제자로 삼아달라는 뜻을 밝혔다.
황진이가 문득 서경덕에게 이렇게 말했다.


<송도에는 꺾을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사옵니다.> 서경덕이 황진이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첫째가 박연폭포요, 둘째가 선생님이십니다.> 서경덕이 미소를 지으며 셋째를 물었다.
<바로 저올시다.> 송도에 있는 것 중 도저히 꺾을 수 없는 세 가지 혹은 가장 뛰어난
세 가지. 송도삼절(松都三絶)은 그렇게 황진이의 입을 통해 만들어졌다.
서경덕이 아무리 도학자이고 뛰어난 사상가라고는 하나 당시의 신분으로 보면 양반이요

그도 역시 사내다.


그러니 당연히 결혼을 했고 첩까지 두었다. 여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서경덕을 대하는
그녀의 자세는 스승을 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로지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지 사내로서의 서경덕이 아니었다.


성거산에 은거하여 살던 서경덕이 가끔은 황진이를 그리워했던 모양이다.

 

마음이 어린 후(後)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가 하노라.

 

서경덕의 시조에서는 분명 여인을 그리는 남자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현상이다. 서경덕이 이 시조를 부를 때에 누군가가
(마당을 쓸던 하인일 수도 있고, 제자일 수도 있다) 들었던 모양이다.
그대로 황진이에게 전해졌다.
그녀 역시 비록 스승으로 서경덕을 모시고는 있지만 끔찍이도 그를 사모했던 모양이다.
서경덕이 부른 시조에 곧바로 화답한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야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난 닢 소래야 낸들 어이 하리오'

 

서경덕의 시조 종장에 대한 답이다. 나도 당신이 그리운 것을, 당신이 나를 그리며
나뭇잎 소리를 내 발걸음 소리로 착각하는 것까지 내가 어쩔 수 있겠는가, 그만큼 나도 당신이 보고 싶다는 말이다.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 못니저 우러 예어 가는고'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情을) 나도 몰라 하노라

 

동짓(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너었다가
어룬님 오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 사후에도 또 다른이 옷을 벗겼으니
백호 임제는 과거에 급제하여 평양으로 벼슬살이 길을 가다 송도 어귀에서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술 한잔을 따르며 노래했다고 한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紅顔)은 어데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이 노래 때문에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벼슬이 떨어졌다.

그 역시 서경덕과 마찬가지로 황진이를 알아본 인물이었다.

 

 
 
 
 

                                                        

 

 

 

 

 

 

 

출처 : 아름다운 강산
글쓴이 : 김종선-강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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