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후, 지오또 이후 성화의 모습은 변한다.
아기 예수의 모습도 완전하게 그려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애 어른 같이
그려졌던 모습에서 아기의 모습으로 바뀌고
마리아의 모습도 가슴이 나오고 여성스런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십자가 예수의 모습도 중세에는 눈을 뜨고 죽음을 이기신 신학적 모습에서
지오또 이후 피도 흘리고 고통스러운 사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오또의 데뷰 무대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있는 아씨시였다.
지오또의 미술 세계를 1세기 동안 다른 화가들이 따라왔다
그만큼 지오또는 미술사에서 새로운 미술을 시작한 사람이다.
지오또의 작품에는 성모님과 예수님의 생애가 모두 표현되어있다.
아씨시 성당에 프레스코 벽화
중세까지는 작자 미상, 지오또 부터 미술가의 이름이 남겨짐
지오또의 스승은 치마부에
요절한 마사쵸(28세)의 발가 벗고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부터
사실주의 시작.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나온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들의 선생이 바로 지오또와 마사쵸인 것이다.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부터 자연 관찰하게 되고 르네상스가 시작.
수포마또 기법:선이 없이 묘한 명암에 의해 그림.(예; 모나리자)
카토릭이 개신교보다 교회 미술이 발달했던 이유는 죽은 후에도 부모를 위해 성당을 짓던지
성화를 그려 바치면 죽은 후 좋은 곳으로 가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부자들의 개인 성당을 경당이라고 했고 이는 자본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씨스티나 성당(교황 선출하는 곳)도 경당이다.
메디치 가문은 경당이 아니라 Church(개인 예배당)를 가졌다.
메디치 가문의 개인 예배당을 위해 미켈란제로가 직접 조각하였다.
명동 성당 고종희 강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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