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책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가리

투립 2017. 1. 23. 13:31



그들의 피가 차거워지기 시작하여 이제 겨우 그 바닷를 건너기에

적당할 만큼의 여력 밖에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이곳의 모래는 부드럽고 따뜻하였던 것인 지도 모른다.


항상 모든 것이 그의 손 안에서 바싹 부서지는 경험이

습관이 될  만큼 겪는 터이면서도

늘 이 꼴 이었고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속에는 그 무엇인가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희망이라는 모든 낚시밥을 끊임없이 무는 것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얼마나 많은 새들이 이 모래언덕 위로

숨을 거두려고 찾아오는 것을 보았는지, 그 중 한마리를 ,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마리를 구하고 보호하고

여기 세상 끝에서 자기 혼자 가진다는 생각,

뜀박질의 그 마지막에 와서

이렇게 하여 인생을 성공 시킨다는 것은

아니러닉한 그의 웃음과 환멸에 찬 그의 표정이 아직도 감추려고 애쓰는

그 모든 순진함을 단숨에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정복한 일이 없는 유일한 유혹,

즉 희망의 유혹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그토록 기막히게 버티고 있는

고집에 질린 채 머리를 으쓱했다.



여자는 다시는 그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여자는 여기 이바라크에 세상의 끝,

사람들이 거의 찾아오지도 않는 카페에 남아있고 싶어했다.

그녀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너무도 다급했고,

그의 두 눈속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애원이 ,

그의 어깨를 껴안고 있는 두 손에는 너무나도 강렬한 약속이 담겨 있었으므로

그는 갑자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와서

그의 인생이 성공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여자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이따금씩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 쳐들었다.

그러는 동안 수십년의 고독이 문득 되돌아와서

그의 두 어깨를 짓눌렀고

아홉번째 파도가 그를 뒤짚어엎어서는

여자와 함께 난바다로 휘몰아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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