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했다 돌아오는 길에 좌석버스를 탔다.
승객이 열댓명이나 됐을까?
빈 자리가 많았다.
나는 기사 양반 뒤쪽 두번째 자리 쯤 여유있게 자리를 잡았는데,
한 두 정거장쯤 갔을까?
기사 양반이 왠 승객에게"벨을 눌렀으면 내리던지 잘못 눌렀으면 잘못 눌렀다고
말을 하던지 해야지 아무 말도 안하면 어떻하자는거야?"라며 호통을 치는게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 누군지 민망하겠다 싶어 뒤를 돌아 보지도 못하고 가고있는데
기사 양반 뒤쪽으로 가까이 앉아 있던 탓에 그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인 즉 배차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아 잔뜩 열이 올라 동료와 함께 누군가에게
욕설을 퍼 붓는 것이었다.
버스가 커브를 돌자 내가 앉은 자리에 햇빛이 들어왔다.
차가 정차하기를 기다려 얼른 옆 자리로 옮겨 앉았는데
앉자 마자 "아줌마, 자리 옮기지 말아요. 저런 사람이 사고 나면 자기 잘못은 얘기 안하고
기사가 운전 잘못해서 다쳤다고 한다니까........" 하고 아까 처럼 큰소리로 떠들어 대는 것 아닌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참지 못하는 내 성격을 알기에 이런 경우 숨을 세 번 쉰다 던가,
눈을 감고 마음을 모아 주기도문을 외운다 던가 하는 여러 방법을 평소엔 숙지하고 있지만
막상 경계에 부딪히면 성격 나온다
어느새 나는"아저씨!" 저음으로 크게 그를 불렀다
다음은 "내가 내 돈 내고 버스 타서 자리 옮기고 싶을 때 마다 아저씨 한테 승낙 받고 옮겨야
되는 겁니까? 어디다 이래라 저래랍니까?"하고 응수했다.
기사 양반은 저런 사람은 처음 봤다느니,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서 밥 줄을 끊어 놓으라느니 떠들어댔다.
나도 지지 않고 "어디서 뺨 맞고 한강에 와서 눈 흘긴다더니 자기네 배차 시간 못 맞추어
화가 난 걸 왜 승객에게 화풀입니까?"고 바른 말을 했다.
무서운 세상이기도 하고 상대가 운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내 마음도 편칠 않았지만
중간에 내려버린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어서 어서 목적지에 닿기만을 기다리는데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은 그 기사 양반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 앞으로 내리셔도 괜찮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등 친절을 베푸는 것 아닌가?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던 어떤 아가씨가 "네,감사합니다."하며 온 몸으로 기사 양반의 친절에
경의를 표하면서 공손히 내리는 것을 보니 쓴웃음이 났다.
나는 "때로 할 말을 하는 것은 용기이며 사회적 공분이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한 동안 불쾌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부끄러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청사기 그리고 이삼평 (0) | 2014.02.21 |
---|---|
득남 (0) | 2013.09.23 |
고양이는 정말 별나, 특히 루퍼스는~~~~~~~~~~~~~~~~~~~도리스 레싱(독후감) (0) | 2013.09.20 |
세 살 버릇 (0) | 2013.09.19 |
가장 찬란한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장혜섭 (0) | 2013.08.30 |